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앤드루 커닝엄 (문단 편집) ==== [[타란토 공습]] ==== 프랑스 함대의 위협은 사라졌지만, 커닝엄은 이탈리아 함대가 이집트의 [[북아프리카 전선]]에서 벌어지는 작전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. 당시 이집트의 영국군은 전적으로 바다를 이용한 보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, [[지브롤터 해협]]을 지나 몰타섬을 둘러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로 오는 해로가 최단 거리의 보급로였다. 지금까지 영국 해군은 수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, 이탈리아 해군은 [[현존함대]] 전략으로 항구에 배를 그대로 놔뒀기 때문에 영국은 제해권을 가지지 못했고, 이탈리아 함대의 공격 가능성은 큰 문제로 다가왔다. 당시 타란토 항구에 있는 전력은 전함 여섯 척, 중순양함 일곱, 경순양함 둘, 그리고 구축함 여덟 척이었다. 공격 가능성을 우려한 해군본부는 저지먼트(Judgement) 작전으로 [[타란토 공습|타란토 항구를 기습 공격]]할 것을 계획했다. 공격을 위해 해군 본부는 [[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|HMS 일러스트리어스]]를 보냈고, [[이글급 항공모함|HMS 이글]]과 함께 공격에 참여하게 되어 있었으나 HMS 이글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하여 일러스트리어스는 함재기 일부만 인계받아 작전을 진행해야 했다. 공격은 1940년 11월 11일 오후 9시에 시작되었고, [[페어리 소드피쉬]] 편대의 두 차례의 공습은 성공적이었다. 유류탱크를 파괴하고 [[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|콘테 디 카보우르]]를 격침시켰으며 [[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|카이오 두일리오]]와 [[리토리오급 전함|리토리오]]도 어뢰에 두들겨맞아 수 개월 동안 수리를 해야 했다. 하룻밤 사이에 이탈리아 해군은 전력이 반토막났고 현존함대 전략의 실효성이 사라졌다. 이 전투는 역사상 최초의 항공기만을 이용한 해전으로, 일본군이 [[진주만 공습]]을 계획할 때 타란토 공습을 중요한 참고 자료로 사용했다. 공습에 대한 커닝엄의 반응은 매우 간결했으며, 마지막 함재기가 착륙한 후 일러스트리어스는 "저지먼트 작전 시행 완료" 라는 신호를 보냈고, 다음날 타란토 항구를 항공 정찰한 사진을 본 커닝엄은 "작전이 잘 시행됨"을 뜻하는 두 글자의 암호로 답장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